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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씬의 레전설 아마릴로 슬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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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ers19

source : http://www.roundersmovie.com/poker.html


전설적인 포커영화 라운더스(1998)를 보면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See, I had this picture in my head. Me sitting at the big table, Doyle to my left, Amarillo Slim to my right, playing in the World Series of Poker. And I let that vision blind me at the table against KGB.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도일을 왼쪽에, 아마릴로 슬림을 오른쪽에 앉히고 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에서 플레이하는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KGB와의 경기에서 내 생각을 흐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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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The New York Times

이 아마릴로 슬림(본명 Thomas Austin Preston, Jr.)이 지난 4월 29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포커로 이름을 떨친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1972년 월드시리즈 오브 포커 메인이벤트에서 우승하기도 하였다. 1992년에는 포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20대를 거의 내기당구를 치면서 보냈다. 이 때 Minnesota Fats이라는 별명을 가진 플레이어와 경기를 한 후 Amarillo Slim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propostion bet을 많이 하는 플레이어로도 유명한데, 이 propostion bet이라는 경기 외적인 베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턴에 하트가 나온다에 얼마’ 이런 식이다. 사람한테 걸 수도 있는데, GSN에서 방송하는 High Stakes Poker Season5 Ep8에서 닉 카사베티가 ‘안토니오 에스판디아리가 푸샵을 35개 이상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건 예가 있다. 여기서 안토니오가 37개의 푸샵을 하는 바람에 닉이 1000불을 잃었다.

또 아예 포커 외적으로도 별 희한한 내기를 많이 했다. 1939년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바비 릭(Bobby Rigg)과 ‘프라이팬’으로 탁구를 쳐서 이겼고, 그 다음에는 프로 탁구선수와 ‘콜라 병’으로 탁구를 쳐서 이겼다. 그 외에도 각설탕 5개를 가져다 놓고 어디에 파리가 가장 먼저 앉을 것인가 하는 내기도 하는 등 뼛속까지 도박꾼의 기질을 보였다.

남녀차별주의적인 성향도 보였는데, 그의 책 Play Poker to Win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A woman is meant to be loved and not to play poker. They get frustrated, whereas a man has less difficulty controlling his emotions. Women are just not ‘with it’. A woman would have a better chance of putting a wild cat in a tobacco sack than she would have of coming out to Vegas and beating me.”

“여성은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포커를 플레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은 감정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데 비해 여성은 그렇지 않다. 여성은 그저 포커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야생고양이를 담배곽에 넣는 것이 베가스에 와서 나를 이기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뭐 옛날 사람이기도 하고, 실제로 포커 씬에 여성이 드물기도 하니까 그냥 넘어가 주도록 하자.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여성 플레이어라면 이 분이 있다. (링크 맨 아래의 동영상을 필감하시길. 이 분의 아주 귀여운 인터뷰가 준비되어 있다)

포커 실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뇌물을 받은 것을 자랑하고 다녔으며, 결정적으로는 2003년에 자신의 손녀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고 유죄를 선고받았다(하지만 본인은 결백하다고 주장하고 있음).

‘연합인포맥스’라는 찌라시에서 나온 기사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릴로 슬림은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고 한다.

“포커 테이블에서 항상 이기는 사람은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바로 자신이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분명 거짓말쟁이이거나 아니면 포커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참고 페이지
http://en.wikipedia.org/wiki/Amarillo_Slim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12/may/06/victoria-coren-amarillo-slim-poker
http://www.amarilloslim.com/
http://www.thepokermba.com/amarilloslim/pages/intro.html
http://www.economist.com/node/21554486
http://www.nytimes.com/2012/05/01/sports/amarillo-slim-five-time-poker-world-series-winner-dies-at-83.htm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3&aid=0002029636

ps. 이거 쓰면서 cine21.com의 라운더스 페이지를 가 봤는데 평점이 너무 낮았다(6.8점). 그래도 imdb.com에서는 7.3, 아마존에서는 8.8인데.. 매우 좋아하는 영화라서 이 정도 평가밖에 못 받는 것이 좀 아쉬웠다. 그래서 회원가입을 하려고 보니 뭔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란다. 아직도 주민번호를 요구하는 사이트가 있다니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뭐 사실 내 주민번호야 공공재이긴 하지만..; 중국 길림성의 린동궈(37세, 무직)씨가 리니지 작업장에서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회사 프로필 작성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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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와 달리 친절한??”

여러 직업을 거쳐서 현재 웹 개발자로 정착하였음. 모든 사람은 세상과 자신에게 의미있는 일을 하도록 태어났다고 생각. 최근에 꽂힌 말은 ‘하이테크 한 스푼, 로우테크 한 스푼’. 인생의 바이블은 ‘모험으로 사는 인생‘과 ‘자유론‘. 취미는 기타, 보드 그리고 당구.

위 내용은 회사 블로그에 들어갈 프로필을 작성한 것이다. 길게 쓰려고 해도 어렵고, 짧게 쓰려고 해도 어려운 게 자기소개이지만 나름대로 잘 요약한 것 같다.
써놓고 보니 기타를 1번 취미로 넣기에는 너무 안 쳤다. 그러고 보니 당구도 요즘 당친들이 모두 여친이 생겨서 빈도가 줄었고.. 보드는 작년 시즌에는 스키장 근처도 못 갔고.. 요즘은 시간이 나면 그냥 누워서 책 보는 게 다인데, 이 생활도 나쁘지는 않지만 점점 너무 사회와 격리(!)되는 것 같아 걱정되기는 한다.

//
참고용으로 다른 스타트업들 블로그 팀소개를 좀 찾아봤는데, 뭔 놈의 ‘네이버를 박차고 나와’, ‘안정적인 어디어디를 뛰쳐나와’ 같은 멘트가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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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0th, 2012 at 3:0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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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방송분 mp3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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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 & 태연 레이디 마멀레이드
티파니&태연-Lady Marmalade(2011 Japan Arena Tour)
으.. 용량 제한이 10메가라서 부득이하게 압축
티파니&태연-Lady Marmalade(2011 Japan Arena Tour).mp3

제시카 황금어장 part of your world
111109 황금어장 제시카 – Part of you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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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5th, 2012 at 11: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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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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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찾는 블로그의 주인장이 책을 쓴다고 했다. 이메일을 답글로 달아놓으면 초안? 컨셉트? 같은 것을 보내줄테니 의견을 달라고 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떡하니 이메일 주소를 남겼고 장문의 메일이 왔다. 내가 다루기에는 너무나 넓고 벅찬 주제들이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떻게 시작할지 감도 못 잡고 있다가 그래도 간단히 생각정리용 포스팅을 한다는 기분으로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그 동안 블로그를 너무 방치해 두었기도 하고..

일단 개발자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해 보자면 주인장은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개발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나는 의도적으로 사업을 개발하는 사람도 개발자로 부르려고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개념을 확장시키려고 하지만 나는 개발자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한정시키고자 한다. 사실 개발자와 비개발자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마치 전문 번역가가 직업이 아니더라도 영어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코딩을 실제로 직업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마치 교양이나 인문학처럼 코딩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서 나는 개발자를 두 부류로 나누고 싶다. 르네상스인 개발자와 code animal. 둘의 협력관계는 다음과 같다. 코드 애니멀들이 최적화된 코드를 유료 또는 무료로 배포하면 이것저것 아는 것 많고 센스도 좀 있는 르네상스인 개발자가 적당히 그것들을 버무려서 서비스를 내놓는 것이다. 이 두 부류가 같은 회사에 있으면 좋은 서비스가 나올 확률이 높다. 이 두 부류의 개발자는 다르게 대우할 필요가 있는데, 사실 코드 애니멀들은 우리나라에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므로 전자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르네상스인 개발자들은 특별히 빡센 알고리즘을 만들거나 대용량 고가용성 아키텍쳐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므로 몰입을 위한 시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코딩하는 데 오랜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리서치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know-where를 쌓는 데 집중해야 한다. 수레바퀴를 재발명하는 삽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 및 프로덕트 매니저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기획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제품을 내놓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르네상스인 개발자의 이상적인 시간분배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4시간 코딩, 3시간 리서치 및 스터디, 1시간 커뮤니케이션.

주인장께 도움은 하나도 안 되고 내 생각만 겨우 좀 정리한 것 같다. 이 글을 보내드리는 게 나을 지는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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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6th, 2012 at 10: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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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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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죄악인가 -권혁범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권혁범

요약

신화적 인물인 단군에서 시작되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근대 산업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그리고 현재에도 배타적 문화를 양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허구적인 개념이고, 해악도 상당하나 긍정적인 역할도 없지는 않다.

1장. ‘우리’, 민족, 민족주의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반드시 앞에 붙는 단어가 ‘우리’ 민족이다. 코리아반도(‘한반도’가 매우 대한민국 중심적 단어이기 때문에 ‘코리아반도’를 쓰기로 한다)에 거주했던 조상과 주민은 ‘우리’ 민족이라고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한다. ‘족’이라는 단어는 혈연의 뉘앙스를 갖기 때문이다.

고교 국사는 민족을 이렇게 설명한다 : 우리 민족은 반만 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 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 ‘단일민족(사실은 단일종족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만)’이라는 것은 사실에 어긋난다. 사실 ‘단일’을 이룬 것은 근대 초엽부터 분단까지의 짧은 시간대에만 한정된다. 일본, 중국, 거린 여진, 말갈, 심지어 아랍계 피도 섞여 있다. 몽고인과의 혼혈, 왜인과의 혼혈도 흔했다. 고구려 역사의 주체 중에는 말갈, 거란, 여진족들이 있었지만 한국사는 이런 사실을 철저히 배제한다. 이는 영토순결주의에 가까운 발상이며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에서 ‘이민족의 흔적’을 삭제하고 부정하려는 근대 민족주의의 결과다.

만약 백제가 살아남아서 ‘백제민국’이 되었다면 한국인들은 오늘날 충청도 일대를 ‘외국’으로 인식하고, 충청도 사투리를 ‘외국어’로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우산국(울릉도)과 제주도가 중세에 독립하여 소규모의 국가로 성장하고 근대에 들어와 민족국가가 되었다면 당연히 현재의 한국인은 울릉도와 제주도를 ‘외국’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역사의 우연과 교육에 의해서 근대 ‘민족’의 경계가 형성된다. 국사, 국어 등을 통해서 (이제는 상투적인 개념이 되어 버린)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부추긴 것은 근대 민족국가의 공통된 특성이다.

또한 민족의식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구성원’들간의 평등의식을 필요로 한다. 즉 신분제의 철폐는 민족의식의 결정적 전제가 된다. 양반이 상민이나 노비를 ‘우리’라고 느꼈을까? 노비가 양반을 ‘우리’에 포함시켰을까? 따라서 국가적 위기 시 관민이 “대동단결하여 민족적 항쟁을 벌였다는 통념”은 민족주의 역사학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일 가능성이 높다. 즉 조선말 신분제 폐지와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저항적 집단의식의 발흥으로 인해 민족이란 개념과 의식이 비로소 생겨나게 되었다.

한국인은 한국인들의 혈연적 동질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오죽하면 유엔에서 한국정부에 ‘단일민족’ 신화를 강조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겠는가? 하지만 생물학적 공통성, 즉 혈연이나 혈통을 전면에 내세우는 민족주의는 흔히 보는 예다. 적합한 예가 나치즘이다.

오늘날의 한국민족이 고대의 왕국 또는 중세의 고려 및 조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사고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이러한 관념은 삼국을 통괄하는 국경이나 삼국, 고려, 조선이 점유했던 국경이 역사의 우연(그리고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현대 코리아의 국경과 비교적 잘 일치하는 데서 생겨난 사고방식이다.

‘한국’, ‘일본’, ‘중국’이라는 민족적 범주가 정착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인들은 이러한 “범주를 자연스럽고 영속적인 것으로 이해하도록, 그리고 이 명칭을 6천년 전의 세계로 아무 생각 없이 투영하도록” 교육받았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민족은 초역사적 개념도 아니고, 고조선부터 내려오는 실체적 개념도 아니다.

2장. 민족과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먼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유지되는 동질적인 민족적.종족적 아이덴티티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가진 ‘한국인’을 상정하는 것은 한마디로 역사의 날조다. 민족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왜 민족이나 민족주의가 생겨난 것인가? 어네스트 겔러에 의하면 그것이 산업화에 필요한 대규모의 교육받은 계층을 만들어내려는 필요에 대응해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근대사회의 시민권 자격의 요건이 글을 읽고 쓰는 능력 및 기술적 능력이라면 “민족 규모의 교육제도만이 그러한 완전한 시민들을 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민족주의도 “자본주의 발전의 이데올로기의 일부”로서 성장했다. 민족을 통하여 통일된 영역에서 (특히 언어나 행정에서) 상업이 큰 장애물 없이 발전할 수 있었고 봉건적 신분제를 넘어선 평등에 기초하여 누구든지 생산자-소비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대다수 한국인들은 하나의 혈통과 언어를 공유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한국에서 단군은 매우 익숙한 개념이지만 조선시대 사람들 대다수가 단군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단군은 조선 말기에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애국계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민족적 구심점을 구축하기 위해서 역사 속에서 발견, 확대한 인물에 불과하다. 을지문덕은 순전히 신채호의 민족주의 역사학에 의해서 발굴된 영웅이며, 이순신은 박정희 시대의 군사주의적 필요에 의해서 탄생했다. 100년 후의 한국에서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근대의 인간은 민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근대 산업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민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3장 민족의 ‘안’과 ‘밖’

민족주의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집단주의이다. 민족의 번영, 국익, 국력,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라면 보편적 가치의 희생은 정당화된다. 민족주의의 틀 안에서 ‘우리’는 이익과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오인’되면서 다양한 갈등과 모순을 은폐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민족=대기업=국가=사회=나라=우리라는 등식이 이미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재벌민족주의’라 부르면 과장일까?
가령 위기 때마다 튀어나오는 ‘우리 민족’ 담론을 보자.

우뚝 서자, 오뚜기 민족!
우리 민족에겐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굴해본 적이 없는 오뚜기 민족,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마음을 합하여 하나가 되고, 더 힘을 모아 결국 다시 일어서는 오꾸기정신. 우리의 내일이 희망적인 것은 우리 모두 굳게 믿고 있는 오뚜기 민족의 저력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우뚝 일어섭시다. 우리 민족은 해낼 수 있습니다. (주식회사 오뚜기 전면광고)

경제위기를 ‘민족의 위기’로 확장함으로써 민족 전체가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치환하여 지배블록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다. 민족주의가 산업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계급 간 갈등을 무마, 은폐하고 국가와 자본가에 대한 적대감을 애국심으로 돌려놓는 것도 이런 등식이 작용한 결과다.

한국의 한 교과서는 민족을 통해서 ‘삶의 의의’를 찾는 개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비록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의 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나의 얼은 우리 민족의 얼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며, 따라서 나는 민족의 존속과 더불어 영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학교용 도덕1 208쪽)

북조선의 전체주의적 교과서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내용에서 한 개인이 민족이라는 집단에 매몰되는 파시즘적 메시지를 읽는다. ‘나’는 오로지 민족을 위해서 존재하는 개체며 민족의 의해서 구원되는 개인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집단주의적 민족주의 이념을 통해 개인은 집단 특히 민족의 발전을 위한 단위며 수단으로 인식된다. 언제든지 개인의 ‘불가피한’ 희생은 요구되고 찬미된다. 다수의 소수에 대한 억압,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논리도 이러한 민족주의적 정서와 논리에 의해 정당화되고 유지된다.
민족이란 사실은 소수민족 및 종족들을 강제로 통합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지배집단의 이해에 맞추어 억압하는 폭력적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다. (만일 지금 제주도나 우산국(울릉도)이 독립한다고 하면 정부는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진압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외부적으로는 타자를 차별하며, 내부적으로는 비동질성을 파괴하고 내부모순을 은폐한다.

4장. 민족주의와 젠더

여성은 민족주의의 고통 혹은 환희를 상징하는 기표가 되었으며 민족의 강인함과 순수성을 드러내는 표지로 작용해 왔다. ‘종군위안부’는 ‘민족적 치욕’이 되었고, 임수경은 ‘통일의 꽃’, 기지촌 여성 윤금이는 ‘순결한 민족의 누이’가 되었다. 죽은 윤금이는 성조기 아래에서 신음하는 한국민족을 상징한다. 동시에 모든 원인을 미제국주의로 돌리고, “한국의 가부장제, 계급 불평등,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노동자의 재식민화와 주변화를 어떻게 가속”시켰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한국의 다수 민족주의자들이 종군위안부를 비난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기 전에 직업적인 매매춘 여성이 아니라 ‘처녀’였다는 사실에 있다. 즉 이들은 이 문제를 인권의 침해라는 차원보다는 정조의 침해로 바라본다. 또한 한국여성이 한국남성에게 성폭력 당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미국남성에게 성폭력 당하는 것은 민족모순의 결과로 정치적인 사건이 된다. 민족은 젠더화되면서 성애화된다. 피해자=여성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 남자들의 자존심을 자극한다.

약소국을 정복하여 꽃다운 처녀들을 끌어다 짐승처럼 짓밟아버린 나라가 있었습니다. 역사는 자칫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신과 경제를 튼튼히 무장해야겠습니다. (프로스펙스 광고)

여성문제는 민족주의에 의해 포획되어 그것의 상징물로 전용되는 것을 벗어나 개별 담론으로서 적극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5장 진보적 민족주의 논쟁

지금 요구되는 것은 민족국가와 세계화의 틀을 동시에 넘어서며 비민족적/초민족적 작은 공동체를 살려내고 재구성하는 시민사회 간의 국제주의적 연대다. 사람, 자본, 상품이 국경을 넘나들며 전 지구를 순환하는 상황에서 월경적 주체로서 여성과 생태주의자들이 맡을 역할이 매우 커 보인다.

6장 민족주의, 유효기간이 끝나다?

제국주의 시대에 조선인들은 종족적 집단주의적 유기적 민족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외부의 위협에 맞선 한민족의 내부적 연대와 집단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과거 50년간의 기간 동안에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에도 제3세계에 속하는 나라에서 ‘민족과 애국’의 담론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고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의 ‘정당성’은 이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이 선험적으로 확보되어 있다.

남북한의 통일과정에서 민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통일과정에서 반드시 중심적 축, 유일한 축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통일을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야 할 민족적 과제로 보기보다는 평등, 자유, 인권, 환경에 관련된 보편적 가치를 위해 이루어야 할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민족을 강조하면 할수록 계급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지배적 언론권력은 “누구나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담론을 퍼뜨리고 ‘조국의 무궁한 발전’이나 반공적 서사를 강조함으로써 계급적 정체성을 약화하거나 억압하는 데 앞장서 왔다.

제3세계, 세계체제의 주변부의 진보적 민족주의가 한 때 가졌던 긍정적 역할과 힘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가졌던 반냉전주의 및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적 성향은 정당하다. 약자가 갑옷을 먼저 벗을 수는 없는 법, 아직은 민족주의의 폐기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민족주의 사이의 전압을 낮추어 국가 사이의 충돌을 막는 열린 민족주의가 차선책이라는 한국사학자 허동현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민족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폐기되지는 않을 것이며 민족을 추월하는 지구공동체의 형성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아직은 민족이라는 범주가 갖는 현실적 영향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 민족은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그것이 국가권력과 결합되어 있는 한 현실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다른 범주나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의 폐해를 밝히고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민족환원론이며 그것에 대한 과도한 심판이다.

민족주의를 견제하고 제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책이 필요하다.
1. ‘민족’을 상대화하고 그것이 근대에 발명된 정치공동체적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2. 시민사회, 민주주의, 인권, 환경권, 개인 및 생명의 권리 및 평등, 존엄성 등을 확산하려는 운동이 강해져야 한다.
3. 민족주의가 지배적 담론의 장에서 약화될 수 있도록 다른 가치체계, 가령 사회정의론, 세계시민주의, 페미니즘 등을 확산 보편화해야 한다.
4. 다른 정체성이 민족적 정체성에 압도되기보다는 그것과 경합하거나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나는 한국인이기에 앞서 노동자다, 여성이다, 장애인이다, 동성애자다 (혹은 기독교인이다 – 기독교가 주류가 아니라면 충분히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5. 민족/국민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6.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범주보다는 ‘주민’을 중심으로 한 실질적 정치적 경제적 공동체를 생성, 유지해가는 게 필요하다.

나아가서 나도 예컨대 인간이 짓밟힐 때 그 짓밟는 자가 이 민족이요, 짓밟는 자가 설령 내 조국이라 할지라도 인간을 옹호하기에 동댕이친 펜대 대신 총을 들고 제 조국에까지 감연히 항거하고 일어서는 용기와 지성을 가진 위인이기를 바라고 싶을 뿐이다. (청마 류치환)


저자의 6번째 해결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중앙집권화와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지역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은 폭력적 민족주의를 해체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지역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하기에 교회는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또 경험도 풍부하다. 교회가 변혁의 시대에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미개발지역 선교활동을 통해 복음전파와 지역공동체 형성이라는 두 가지 사역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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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7th, 2012 at 1:0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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